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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의 손은 아직 약재를 썰고 있었다. 위중한 병자였다. 저 천 덧글 0 | 조회 28 | 2021-06-04 12:41:36
최동민  
허준의 손은 아직 약재를 썰고 있었다. 위중한 병자였다. 저 천등벌거숭이 같은 떠꺼머리에게 부자라는 극약이 섞인 약을 달이게 할 순 없었다. 또 자기가 지어주고 자기가 달여준 약을 먹고 병자가 편안해하는 모습도 자기 눈으로 보고 싶었다.침도 써야 할 때 침이지 아무 병에나 침이 듣는 건 아니오. 그리고 분명 약속을 하건대 한양에 다녀오는 길에 꼭 다시 이곳에 들러 여러분의 병을 보아 드리리니 지금일랑 그대로 보내주시오.그 허준인가 하는 사람 제법 대단한 의원인가유?임오근이 공연히 앙심을 담은 말에,허준의 등뒤에서 정상구와 우공보의 음성이 났으나 허준이 그 두 사람을 개의치 않고 병자에게 말했다.또 한번 내뱉으며 그 아비의 손가락이 창날처럼 아들의 눈을 향해 뻗었다.이미 여기 있는 사람만이 아니고 어디에 환자가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일부러 데리러도 가오니까?여전히 당당하고 여전히 오연한 그 모습 속에서도 허준의 눈에는 눈앞의 유의태가 그렇게 비치고 있었다.그 방안에서 눈으로 발견하기보다 먼저 코끝에 맡아진 건 속이 뒤집힐 듯이 진한 마늘냄새였고 방도 부엌도 한데 이어진 그 거적바닥에는 상상했던 중년의 두 환자가 이팔이 넘었을 여자아이 둘과 국솥을 싸고 둘러앉아 있었다.유의태의 옷고름이 술잔을 든 팔뚝에 휘감기며 날렸다.이는 초승달이 날 때는 사람의 혈기 또한 가장 정하고 맑아지는 시기로 몸안의 기운이 찰 때이며 달이 보름이 되어갈수록 혈기가 실하고 살갗이 탄탄해지는 것과 달이 이지러지면 살갗이 시들고 경감이 허하여지는 때임을 알아야 하고 그러므로 날이 한랭하면 찌르는 것은 삼가고 달이 날 때엔 사하지 말고 달이 찰 때엔 보하지 말고 달이 치지러질 때는 큰병을 침으로 낫우려 말라는 것이니 달이 찰 시기에 외상을 입으면 특히 피를 더 많이 흘리게 되고 보름 전후의 출산은 딴 때보다 하혈이 심하다는 것 등이 모두 침을 지닌 의원이 명심해야 할 경구들인 것이다.길안내?그리고 뒤늦게 하루가 늦어서 시장에 이르러 몸부림치더라는 그 절망을 듣곤 그 남편을 자기가 얼싸안아 위
사연인즉 떠꺼머리의 노모가 그 몸으로 주막으로 달려가 일어난 일을 얘기했고 이에 주모가 버드네로 달려가 전갈하여 촌민들이 떼를 지어 달려와 허준의 결백을 직소한 것이었고 자초지종 내용을 들은 현감이 서둘러 허준을 불러낸 것이었다.죽어가는 목숨을 향해 구원의 손을 뻗치기는커녕 빈사의 생명이 죽음의 고비를 맞아 마지막 몸부림치는 그 단말마적인 광경을 냉엄하게 지켜보는 유의태의 모습이 연상되어 허준의 등줄기엔 자꾸만 식은땀이 흘렀다.어쩐 일이신가. 의원을 비워두고 한가하게 열흘씩이나 예서 묵었다니.그런 사람들일수록 소문의 실태를 바로 알려고 하기 전에 흥미 위주로 사건을 풀어갔다.유의태! 유의태!달이 뜨기 전에 한 사람이라도 더!당분간 그 손으로는 정교한 침을 못 놓을 거외다. 팔뚝이 근 반 뼘이나 찢기셨소.김민세가 아들의 신발짝을 내보이며 외쳤다. 순간 한 눈이 빠진 환자의 정한 외눈이 김민세를 향해왔다. 뒤이어 들고 있던 여자 환자의 국사산성 가까이 이른 김민세 들의 뒤로 십여 명 병자들이 나타났고 새 식구들을 맞이하는 산성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산성 사람들과 헤어져 김민세와 안광익 그리고 앞장을 선 소년이 산 위로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김민세가 죽음과 같은 정적에 싸인 산길을 더듬어 이윽고 산날망에 을랐을 때였다. 뜻밖에 그곳에는 비에 풍쳐 찌그러져가는 서낭당이 돌배나무와 돌무더기를 거느리고 있었고 그 앞에 나어린 며느리를 데린 칠십노파가 치성을 드리고 있었다. 그 가파른 산길에서 만난 사람의 모습을 보자 반가운 헛기침이라도 했어야 할 김민세는 오가며 지나치는 사람마다 수백 번 물은 그 질문을 또 하고 만 것이다.무모한 줄은 알고 있네. 그러나 흘려보낸 세월 이제 와서 후회한들이지.허준이 산음에서의 사연이야 어떠했든 수백리 타관의 한 주막에서 해후하게 될 도지와 임오근의 안부를 반겨서 묻자,새로 들어온 중에 촉망받는 자라면 이번에 첫등으로 뽑힌 허준이 아니올지?사행차 가시면 빨라도 두세 달 또 더러는 대국의 구경도 하시면서 한 반 년 지나서 돌아오시기도